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기아 EV3는 EV6(중형·2021년 출시), EV9(대형·2023년)에 이어 지난해 출시돼, 현재 기아 전기차 중 막내 역할을 맡고 있다. 곧 출시될 EV4가 준중형 세단인 만큼 당분간 국내에서 지금의 타이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 측면에서도 EV3는 기아 전기차 가운데 가장 저렴하다. 58.3킬로와트시(㎾h) 배터리를 탑재한 기본형(에어 스탠다드)가 3995만원으로 서울 기준 보조금 528만원을 받아 34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내연기관 소형 SUV와 사양을 비슷하게 맞추면 최종 가격 차이는 500만원 정도로 좁혀진다.
상당수 대중차 브랜드가 약 4000만원을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으로 제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EV3는 그에 가장 잘 부합한다.
최근 EV3를 700㎞가량 시승하며, 이 차를 선택지에 포함할 이유가 비단 가격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EV3는 비슷한 가격대 전기차 가운데 단연 최고의 상품성을 갖고 있다. 성능·편의사양은 물론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배터리 효율성까지 흠 잡을 데가 없다.

◆디테일 돋보인 실내, 탑승객 친화적 구성 '눈길'
먼저 외관부터 살펴보면 앞서 출시된 EV9을 축소시킨 모양새다. 박스카를 연상시키는 형상에 미래지향적 느낌을 잘 살려낸 헤드램프(전조등)과 리어램프(후미등)가 인상적이다. 2열 도어 손잡이를 C필러(세 번째 기둥) 쪽에 배치한 점도 돋보인다. 여기에 기하학적 형태로 된 19인치 휠이 EV3의 모습을 완성한다.
실내는 기아 전기차 특유의 간결함과 세련미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요소는 하나로 합쳐 놓은 듯한 디지털 계기반과 중앙 터치스크린, 그리고 작은 협탁을 떠올리게 하는 센터 콘솔(앞좌석 가운데 수납함)이다. 특히 팔걸이 겸 뚜껑을 열면 수납 공간이 있는 일반적인 센터 콘솔 대신 테이블 기능을 넣은 점이 이채롭다.
신체가 닿거나 눈에 보이는 부분은 상당히 고급스럽게 마감됐다. 시승차 실내는 푸른 계열 색상이었는데, 패브릭 소재와 밝은 색 장식이 곳곳에 쓰여 아늑한 느낌을 줬다.
전반적인 공간 구성이나 각종 버튼 배치는 군더더기가 없고 직관적이다. 일부 브랜드 차량은 전기차가 갖는 '첨단' 이미지에 집착한 나머지 버튼을 대거 없애 운전자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데, EV3는 그렇지 않다. 깔끔함을 보여주면서도 조작 편의성을 지켜냈다.

사소하지만 한 가지 감탄한 요소는 중앙 터치스크린 아래에 있는 인포테인먼트 버튼이다. 처음엔 터치 버튼에 햅틱(진동 반응)을 구현한 줄 알았지만, 집중해서 몇 번 눌러 보니 일반적인 버튼이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는 감촉을 햅틱처럼 느껴지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트릭(?)을 써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고급차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조작감을 만들어 냈다. 이런 '디테일'이 기아가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칭찬일까.
뒷좌석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헤드룸(머리 공간)과 레그룸(무릎 공간) 모두 여느 소형 SUV와 비교해도 여유롭다. 등받이를 뒤로 젖힐 수 있어 장거리 여행도 거뜬하다. 앞좌석 뒷면에는 외투를 걸 수 있도록 했고, 2열 송풍구 하단에 수납함을 마련해 활용성을 높였다. 앞좌석 측면에는 각각 USB C타입 단자를 넣어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게 했다.
◆실내 V2L, 동급 전기차 중 독보적 경쟁력
EV3가 경쟁 모델과 비교해 높은 점수를 받는 요소는 실내 V2L(전원 공급 장치)이다. 실내 V2L을 사용하면 외부 충전구에 V2L 커넥터를 연결하지 않고도 차 안에서 220V 전자제품을 쓸 수 있다. 최대 가용 전력은 약 3600W로 전자레인지(1000W)와 10인용 전기밥솥(1500W)을 동시에 작동하고도 남는다.
실내 V2L을 써보니 EV3가 '게임 체인저'로 불린 이유를 납득했다. 전자제품을 공간 제약 없이, 심지어 이동 중에도 사용할 수 있어서다. 넓은 내부와 몸에 잘 맞춘 좌석, 실내 V2L 덕분에 소형 SUV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는 앞서 다른 전기차를 시승했을 때처럼 다시 한 번 '스텔스 차박'에 나섰다. 인적이 드문 강원도 한 해변에 자리를 잡고 주행을 제외한 기능을 쓸 수 있는 유틸리티 모드를 켰다. 그리고 V2L 단자에 노트북을 연결해 놓친 이메일과 기사는 없는지 확인한 뒤 본격적인 휴식에 돌입했다. 이 모든 과정은 차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이뤄졌다.
잠을 잘 땐 앞좌석 '릴렉션 컴포트 시트'를 사용했다. 좌석 하단부 측면 버튼을 길게 누르니 엉덩이 부분과 등받이 각도를 알맞게 조절해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 줬다. 미리 설정된 것보다 등받이를 조금 더 젖혀 반쯤 누운 상태로 했더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헤드레스트(머리받침)가 뒤통수뿐 아니라 머리 양 옆을 잡아줘 안정감이 들었다.
◆익숙하게 편안한 주행 질감…배터리 효율 '최고 수준'
전반적인 주행 성능은 동급 전기차 대비 평균 이상이다.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28.9㎏f·m로 현대차그룹 1.6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수치가 비슷하다. 체감 성능은 한 등급 위 엔진에 가깝다.
다른 전기차가 모터의 순간적인 구동력을 거의 그대로 전달하는 데 반해, EV3는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좀 더 부드러운 반응을 보인다. 내연기관차와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초반 구동력을 제어한 모습이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니 가속 페달이 한결 민감해져 전기차 특유의 가속력을 맛볼 수 있었다.

승차감은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다. 요철을 지나다 보면 1990년대 차의 소위 '물침대' 느낌이 살짝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잘한 충격을 운전자에게 민감하게 전달하는 면도 있어 노면이 고른 구간에선 단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방음 대책은 훌륭한 편이다.
EV3의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배터리 효율성이다. 약 280㎞를 달리며 히터까지 틀었는데 배터리 소모량 53%밖에 안 됐다. 시승차는 롱레인지 모델로 제원표에 나온 1회 충전 주행거리는 501㎞지만 실제로는 530㎞는 달릴 수 있는 셈이다. 시승을 마친 뒤 계기반에 표시된 평균 전비는 6.3㎞/㎾h로 복합 표준연비 5.1㎞/㎾h보다 높았다.
총평을 하자면 EV3는 예산을 4000만원으로 잡았을 때 최고의 소형 전기 SUV다. 경쟁 모델보다 많은 보조금이 나오는 점까지 생각하면 구매 장벽도 높지 않다.
트림(세부 모델)별 가격은 △에어 스탠다드 3995만원 △에어 롱레인지 4415만원 △어스 스탠다드 4390만원 △어스 롱레인지 4810만원이다.
추천하는 조합은 에어 롱레인지 트림에 △실내 V2L이 포함된 컨비니언스(119만원) △1열 통풍·열선·릴렉션 시트 등으로 이뤄진 컴포트(138만원) △빌트인 캠2(45만원)을 추가한 것이다. 이렇게 구성한 실구매가는 서울시 기준 4055만원, 부산시 기준 3878만원이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sy@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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