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보고서②] 때릴 땐 언제고 아쉬우니 찾은 文·尹…사라진 '삼성 10년'

삼성 수사 주도한 '尹 라인'…'무리한 수사' 사과無
"적폐 청산" 앞장선 文·尹, 권력 잡자 JY 향해 구애
총수 잃은 삼성, AI 초기 대응 실패하며 위기 직면

성상영 기자

2025-02-27 16:13:20

[빅데이터뉴스 성상영 기자]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편집=성상영 기자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편집=성상영 기자

가장 오랫동안 재판을 받은 대기업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다. 국정농단 수사에서 시작된 그의 '사법 리스크'는 최근 검찰의 상고로 10년을 꽉 채우게 됐다. 이 기간 삼성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위기는 현실로 나타났다. 본지는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을 진단하고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뉴 삼성'을 조망한다. (편집자 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항소심 무죄 선고와 관련해 "공소 제기를 담당한 사람으로서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기소 결정을 하고 근거를 작성한 입장에서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며 사과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원장은 사과 발언 당시 "사법부가 자본시장법 문헌 해석만으로 주주 가치 보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법 해석에만 의지하기보다는 자본시장법을 포함한 법령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는 알려진 내용과 달리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아닌 '법원 설득 실패'를 사과한 것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재용 '10년 재판' 뒤엔 '윤석열 라인'

삼성 잃어버린 10년의 시발점이 된 국정농단 뇌물 수사는 2016년 말 당시 특검팀에 있던 윤석열(현 대통령)·한동훈(전 국민의힘 대표)·이복현(현 금융감독원장) 검사가 주도했다.

이른바 '윤석열 라인'으로 알려진 이들은 2019~2020년 삼성 불법 승계 수사 지휘계통을 보면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시기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차례로 지냈고, 한 전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검사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했다. 이 원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를 역임했다.

수사팀은 삼성 계열사 10곳과 임직원 주거지를 10여 차례 압수수색하고 임직원 300여 명을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2019년에는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공장 바닥을 뜯어 회사 공용 서버와 노트북 등을 확보했다.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차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수집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이 자료들을 핵심 물증으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절차를 지키지 않고 위법하게 자료가 수집됐다는 이유다. 이는 이재용 회장이 1·2심 무죄 판결을 받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지난해 2월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 측을 향해 "수사기관이 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 사실과 관련이 없어, 압수 대상이 아닌 정보까지 영장 없이 취득해 영장주의와 적법 절차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꾸짖었다. 이러한 지적은 2심 선고에서도 반복됐다.

'적폐' 규정한 文, 수사 지휘한 尹…정권 잡더니 '러브콜'

국정농단 뇌물 사건과 불법 승계 사건에 이르는 9년간 이재용 회장은 총 185차례 재판에 출석했다. 이 기간 법원 선고만 총 6번이 이뤄졌다. 국정농단 사건 때에는 565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검찰이 불법 승계 관련 항소심 무죄 판결에 불복하면서 이 회장은 현재 일곱 번째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 회장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두 번이나 정권이 바뀌었고, 이들 정권은 아쉬울 때마다 삼성을 찾았다. 국정농단 사건의 반대급부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나, 검찰 출신 대통령인 윤석열 정부나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을 '적폐'로 규정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삼성전자 국내·외 사업장을 자주 방문했다. 인도 노이다 공장(2018년)과 경기 화성 반도체 공장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2019년), 평택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2021년)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이 회장이 청와대 초청을 받아 문 전 대통령을 만난 횟수도 임기 중 알려진 것만 네 차례다. 문재인 정부 핵심 요인을 배출한 참여연대마저 "국정농단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과 이 회장의 잦은 만남을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긴밀하게 삼성과 스킨십을 했다. 취임 직후인 2022년 5~6월에 걸쳐 15일간 6번이나 이 회장을 만났다. 유럽·중동·일본·미국 등 해외 순방 땐 빼놓지 않고 이 회장과 동행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이 한창이던 2023년에는 유명한 '떡볶이 먹방' 장면이 탄생하기도 했다.

최대 피해자는 '골든타임' 날려버린 삼성

총수의 장기간 이어진 재판에 삼성은 위기로 내몰렸다. 여러 계열사 중에서도 특히 이재용 회장이 '회장' 직함을 단 삼성전자의 타격이 컸다. 삼성전자는 2022년 연 매출 300조원을 돌파한 이후 경영 실적이 답보 상태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사업이 위기의 중심에 있다. SK하이닉스보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먼저 개발하고도 이 분야에서 뒤져 있다. 오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선언했지만, 팹리스(설계 전문)와 파운드리(위탁생산) 모두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전자기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부문에서 미국 퀄컴을, 파운드리에선 대만 TSMC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HBM과 시스템 반도체 모두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하드웨어라는 점이 뼈 아프다. 가전과 모바일 기기에 공격적으로 AI를 탑재하며 경쟁 업체보다 한발 빠르다는 평가를 받지만, 반도체 전성기 '초격차'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삼성이 AI 주도권 선점에 실패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기(失期)와 관련해 2019년 HBM 개발 조직 축소, 2017년 이후 소식이 끊긴 대형 인수합병(M&A), 재무 그룹의 과도한 권력 비대화 등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과 관련해 조직 간 이견을 조율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총수 부재는 결정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위험이 따르는 대규모 M&A나 경영진에 관한 문제는 이사회 이전에 회장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 회장은 재판과 취업 제한 때문에 활동 폭이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sy@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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