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측은 이러한 시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이 최소 24억원에서 최대 5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과연 시위 가담 학생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우리 민법은 일반적으로 과실책임주의, 자기책임의 원칙 또는 개인책임의 원리를 그 기본 원리로 취하고 있다. 따라서 행위자는 자신의 고의 ․ 과실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타인이 행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즉, 이 사건의 경우 동덕여자대학교 학생은 자신이 직접 파손한 물건, 자신이 직접 락카칠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A학생이 붉은색 락카로 학교 건물 외벽에 '남녀공학 반대'라는 여섯 글자만 그렸다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A학생은 학교 측에 위 여섯 글자를 지우는데 소요되는 비용만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른 B, C, D … 학생이 락카칠 하는 등 물건을 파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측이 A학생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A학생이 파손한 부분을 정확히 특정하고, 해당 부분에 대한 원상회복 비용을 특정해야 A학생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자기책임원칙의 엄격한 고수가 구체적 사안에 따라 불합리한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5, 6명의 사람이 1인을 집단 구타해 그 1인에게 상해가 발생한 경우 자기책임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각 가해행위자가 1인에게 가한 가해행위를 개별적으로 특정해야 하고, 또 그 가해행위에 따라 발생한 상해가 어떤 것인지를 특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결국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위와 같은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해 우리 민법 제760조는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할 경우 공동불법행위자들은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연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는데, 위 '연대해'의 의미를 우리 대법원은 부진정연대채무로 해석하고 있다.
부진정연대채무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공동불법행위자들은 자기행위가 발생시킨 범위를 넘어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 전부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 A학생의 예에 적용해 보면 A학생은 자신이 그린 '남녀공학 반대'라는 여섯 글자를 지우는데 소요되는 비용뿐만 아니라 B, C, D…학생이 락카칠 하는 등으로 파손한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렇다면 공동불법행위 규정에 따라 이 사건 시위에 가담한 학생 모두가 최소 24억원에서 최대 54억원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 가담한 학생에게는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불법시위를 주도하거나 불법시위 결의에 동의한 학생들에게는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대법원은 공동불법행위 성립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자 상호간에 의사의 공통이나 공동의 인식이 필요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각 행위에 관련공동성이 있으면 족하고 그 관련공동성 있는 행위에 의해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그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인바,(중략) 민법 제760조 제1항의 이른바 협의의 공동불법행위의 구성범위를 한계지우기 위해 객관적 관련공동성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제2항의 독립행위의 경합의 경우와 그 제3항의 교사방조행위를 공동불법행위의 범주에 넣어 같은 법률효과를 부여하는 것을 감안해 그 점과의 균형이 맞도록 해석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8. 9. 25. 선고 98다9205 판결 등 다수 판결).
즉 불법행위를 함께 결의하거나 함께 불법행위를 한다는 인식까지는 필요하지 않더라도 각 행위에 객관적 관련공동성은 인정되어야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
이 사건의 경우 단순 가담한 학생에 대해 객관적 관련공동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개별 학생이 불법시위에 참가했다는 사실 이외에 각 학생이 어떠한 행위를 한 것인지 개별 행위는 특정해야 한다.
또한 해당 행위의 범위 및 정도가 단순 가담의 정도를 넘어 다른 가담 학생의 행위에 영향을 줄 정도라는 점이 인정 되어야 하며, 그 영향은 당시 주변에 있던 몇몇 학생 뿐만 아니라 학교가 입은 피해 전체에 대해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돼야 개별 학생의 행위와 전체 피해 사이에 객관적 관련공동성이 인정될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객관적 관련공동성을 입증하기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물론 그 입증에 성공하면 단순 가담한 학생에 대해도 전체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학교는 자기책임의 원리에 따라 단순 가담 학생에 대해 그 학생이 행한 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시위를 주도하거나 불법시위 결의에 동의한 학생들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민법 제760조 제3항은 '교사자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불법시위를 주도하거나 결의에 동의한 학생들의 경우 전체 행위를 교사했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전체 피해를 보상할 책임을 부담하고, 이는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므로 파산 및 개인회생으로도 면책되지 않는다(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566조 제3호, 625조 제2항 제4호).
모든 시위와 사회적 움직임은 그 목적과 방식이 타당해야 하고, 법적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돼야 하는 공간이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법적, 윤리적 책임도 존재한다.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체감해, 더욱 성숙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한단계 발돋움 하기를 바란다.
※김선인 변호사 약력
▶ 경력
現) 법무법인 율사서재 파트너 변호사(남양주 분사무소)
現) 의정부지방검찰청 피해자 국선변호사
現) 의정부지방검찰청 남양주지청 피해자 국선변호사
前) 법무법인 자유라이프
▶ 자격 등
58회 사법시험 합격
48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한변호사협회 연수원 민사집행 과정 수료
대한변호사협회 연수원 채권추심 과정 수료
대한변호사협회 연수원 가사법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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