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美 증시 141조 몰렸다…역대 최대 규모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이 지난 7일 기준 1013억6571만달러(약 141조원)를 찍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처음 1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반면 국내 증시에선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2일 59조원에 육박했던 투자자예탁금은 8일 기준 5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투자자예탁금이 50조원 선이 무너진 것은 11개월 만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예치된 자금으로, 시장의 대기 자금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국내 자금이 해외로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미 증시의 뚜렷한 수익률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13일 기준 올해 미국 주요 지수들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4.84%, S&P500 지수는 9.49%, 나스닥 종합지수는 8.86% 상승하며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코스피 지수는 올해 1월 2일 2669.81포인트에서 13일 종가 기준 2431.1포인트로 떨어져 약 8.9% 하락했다. 미국과 한국 증시의 수익률이 무려 18%포인트 가까이 차이 나면서 국내 자금의 미국 이동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재선까지 겹치며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증시 선호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감세와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미국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랠리'로 불리는 이 상승세는 기업 친화적 정책이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여기에 미국 경제의 견조한 회복세도 한몫하고 있다. 고용지표 개선과 소비자 신뢰지수 상승 등 각종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기업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기술주들의 강세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헬스케어 등 혁신 분야를 주도하는 미국 기술기업들의 성장이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트럼프노믹스 기대감과 함께 AI 등 기술 혁신, 경제 회복세 등 여러 호재가 겹치면서 미국 증시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한국과 달리 기술주 중심의 성장 모멘텀이 강하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서학개미' 맞춤형 서비스 확대
해외주식 투자자가 늘면서 증권사들은 국내 투자자 유치를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들의 국내주식 거래 수수료율은 치열한 경쟁으로 0.01%도 안 되는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미국주식 수수료율은 0.03~0.25%로 책정돼 있다. 결과적으로 해외주식 거래에서 국내보다 최대 10배 높은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다.
실제 3분기 실적을 보면 '서학개미' 보유 증권사들의 성적이 돋보였다. 한국투자증권은 3분기 순이익이 33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1% 늘면서 누적 순이익 1조원을 돌파, 올해 첫 '1조 클럽' 멤버가 됐다.
미래에셋증권은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3분기 순익이 292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무려 276.2% 급증했다. 삼성증권도 2403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전년 동기보다 59.1% 성장했다. NH투자증권은 1539억원으로 52.7% 늘었고, 키움증권도 2117억원으로 4.4% 증가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국내 주식 수수료 수익은 감소했지만, 해외 주식 거래대금이 56% 급증하면서 전체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은 7% 증가했다. 해외 주식 투자 열풍이 증권사들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하자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앞다퉈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미국 금융사 스티펄 파이낸셜(Stifel Financial Corp.)과 제휴를 맺고 'Sleepless in USA'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이 서비스는 지난 8개월간 미국 상장기업 400여곳에 대한 1400여건의 리포트를 발간했으며, 매일 아침 8시 30분과 오후 5시 두 차례에 걸쳐 현지 애널리스트의 최신 분석을 제공한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해외투자형 랩어카운트 3종을 선보였다. 메리츠글로벌토러스랩, 메리츠글로벌더퍼블릭랩, 메리츠글로벌레그넘EMP랩 등이다. 이들 상품은 해외주식과 상장지수상품(ETP)에 투자하며, 혁신 테마형부터 자산배분형까지 투자자 성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정기 투자하기' 서비스를 개편해 미국 전 종목에 대한 정기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서비스는 지난해 5월 출시 이후 9월까지 누적 거래계좌 8만1600개, 신청건수 24만건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PB(프라이빗뱅커)들의 해외주식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해외주식 리더' 제도를 신설했다. 해외주식 자산 규모, 고객 수익률 등 정량적 지표와 고객 및 직원 추천, 리더십 등 정성적 지표를 종합 평가해 11명의 리더를 선발했다. 이들은 정기 교류회를 통해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현장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증시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해외주식이 증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은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민호 빅데이터뉴스 기자 ymh@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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