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전체 44개 퇴직연금 사업자 중 37개 금융회사(적립금 기준 94.2%)에서 퇴직연금 실물이전이 가능해진다. 삼성생명과 하나증권, BNK부산·경남은행, 광주·iM은행과 iM증권 등 7곳은 시스템 구축 등의 이유로 내년 4월까지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실물이전 제도는 기존 퇴직연금 계좌에서 운용 중인 상품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는 제도다. 그 동안은 금융사를 옮기려면 보유한 상품을 모두 매도해 현금화하거나 만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한 중도해지 수수료나 환매 후 재매수 과정의 손실 위험 때문에 대다수 가입자가 처음 가입한 금융사에서 이탈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실물이전 제도가 개시됨에 따라 간단한 절차를 통해 이전이 가능하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개인형퇴직연금(IRP)과 확정기여형(DC)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먼저 IRP 이전은 온라인으로 간단히 가능하다. 옮기고 싶은 금융사 모바일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새 계좌를 개설한 뒤 실물이전을 신청하면 된다. 이후 기존 금융사에서 확인 전화가 오면 동의하는 것으로 절차가 끝난다.
DC형의 경우 회사를 통해 진행된다. 가입자는 회사 인사팀에 "00증권으로 퇴직연금을 옮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이후 인사팀에서 제공하는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절차가 마무리된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은 은행권이 '독식'하는 모양새다. 올해 3분기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400조878억원 중 은행권이 210조2811억원(52.56%)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증권사(96조5328억원)와 보험사(93조2654억원)를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42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은행(39조5000억원), 하나은행(37조78억원), 우리은행(25조원)이 뒤를 잇고 있다. 개인형 IRP 시장에서는 국민은행(14조7800억원)과 신한은행(14조6600억원)이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증권사 중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이 27조3800억원의 적립금을 보유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어 현대차증권(16조3800억원), 한국투자증권(14조4800억원), 삼성증권(14조1100억원) 순이다. NH투자증권도 7조1900억원의 적립금을 운용하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금융사 '맞춤형 서비스' 경쟁 시대 개막
기존 강자인 은행권은 '안정성'에 '수익성'을 더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AI 기반 '신한연금케어' 서비스로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는 한편, ETF를 177개까지 늘리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KB국민은행은 IRP 부문 업계 최고 수익률(14.61%)을 내세우며, ETF와 예금상품을 각각 101개, 890개로 확대했다. 하나은행도 DC형에서 14.14%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6분기 연속 은행권 1위를 유지했고, 1270여개의 업계 최대 상품 라인업으로 차별화에 나섰다.
증권사들은 높은 수익률과 다양한 서비스로 맞불을 놓았다. 미래에셋증권(적립금 27조원)은 AI 기반 투자 서비스와 24시간 상담센터를 구축했으며, 고용노동부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사업자로 선정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KB증권은 IRP 7.56%, DC형 6.21%의 수익률을 무기로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은 ETF 특화 전략으로 IRP 부문 5.93% 수익률을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를 계기로 한국 퇴직연금 시장이 선진국형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5년 ERISA Act와 401k 제도 도입으로 퇴직연금의 자산시장 투자가 활성화됐고, 이는 자본시장 발전으로 이어졌다.
다만 현재 국내 퇴직연금의 83.2%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인 데다, 실물이전도 동일 상품 취급 금융사로만 가능한 만큼 시장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물이전 제도는 가입자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금융사들의 상품 경쟁력과 서비스 혁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민호 빅데이터뉴스 기자 ymh@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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