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대교 개통 후 차도선 끊겨… 어민선착장 활성화’

항구에 이완용부친 비석… 신안군, 자라~장산도간 연도교 건설 최우선 추진

김궁 기자

2021-12-13 18:07:46

자라대교 (사진제공 =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자라대교 (사진제공 =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빅데이터뉴스 김궁 기자]
자라도(者羅島)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의 부속 섬이다. 목포항에서 21km 가량 떨어진 이 섬은 그 형태가 자라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자라도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자라도 남동단의 산 구릉과 바다로 도출된 반도의 형상은 각각 자라의 몸통과 머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자라의 모습을 닮아 있다.

원래 자라도는 3개의 섬이었으나 하나로 합쳐져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안좌도에서 자라대교를 건너 처음 접하는 곳이 휴암도였으며, 이곳의 서쪽이 증산도, 그리고 그 옆이 자라도였다.

1949년 이들 섬 사이에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휴암도와 증산도 사이에는 호남염전이, 그리고 증산도와 자라도 사이에는 계림염전이 개발됐다고 한다.

자라도가 연도되기 전, 이 섬에는 4개의 어민선착장과 1개의 여객선 운항선착장이 자리했다. 하지만 20184, 길이 670m의 왕복 2차선 자라대교가 개통되면서 여객선 운항은 중단됐으며 항구는 어민선착장으로 그 기능이 축소됐다.

섬 주민인 장한선(55·자라리 1구 거주) 씨는 “7년 전 자라도로 이주할 당시 교량의 하부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본섬인 안좌도 복호항과 자라도간에 하루 3회 도선이 운항됐다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이 도선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그 당시 섬주민은 이 도선을 무료로 이했으며, 복호항까지 배로 5분가량 소요됐다고 소개했다.

예전에는 목포 앞선창을 출항해 복호, 자라, 장산, 하의 및 신의 간을 운항하는 새조왕호와 같은 여객선이 다녔고 이후에는 차도선이 운항됐어요. 자라도에서 목포항까지는 1시간 20분가량 소요됐습니다.”

자라도가 고향이라는 문행민(60)씨는 이런 차도선이 하루에 5~8회 정도 다닌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자라도선착장은 현재 가끔 외지 방문객이 들리는 한적한 항구다. 그럼에도 이 항구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는 역사적 기념물이 자리하고 있다.

관찰사이공호준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鎬俊永世不忘碑)’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의 양아버지 이호준관찰사가 1870년 당시 자라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한 비석이 이곳 자라도항에 세워져 있다.

안중근의사에 관한 유명 연구자로 알려진 중국 하얼빈대학 김월배교수와 친구라고 소개한 이곳 주민 장한선씨는 현장에서 직접 김교수와 문자를 교환하며 이 불망비가 원래는 자라도 해안가에 있었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항구로 옮겨졌다고 소개했다.

이 비석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부적절하다는 반응과 함께 이호준이 매국을 한 것도, 연좌죄도 아닌데 이 사람까지 매도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었다.

한 주민은 고려시대의 공도정책은 차치하더라도 왜란과 동학,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를 가장 어렵게 겪고 큰 피해를 본 사람들 중의 하나가 신안의 섬 사람들이었다그런데 독립운동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당시 관찰사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비석마저도 육지인의 시각과 현대의 가치로 재단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신안군은 최우선 사업으로 자라도~장산도간 교량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교량이 완공되면 장산도는 자라도와 연륙되며 지방도 805호선 및 국도 2호선이 연결되게 된다.

김궁 빅데이터뉴스 기자 new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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