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측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며, 실제로 살면서 많은 예측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측을 왜 하는지를 알고 있을까. 상당수 사람들은 예측보다는 예언에 환호한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양자를 구별하기는 한다.
가령 정봉주 전 의원의 입담은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작은 단위 선거에 직접 출마하려는 사람이 정 전 의원의 조언을 토대로 선거전략을 짜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정 전 의원의 판단과 예측은 기본적으로 그 본인의 ‘정치’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여러 가지 예측을 던져놓고 그중 제법 들어맞은 것들만 거듭 언급하여 신망을 쌓는 것도 일종의 정치행위로 봐야 한다. 비난할 이유는 없지만, 그걸 컨설턴트의 조언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인이 정 전 의원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정 전 의원이 할 수 있는 말, 할 말은 ‘나 정봉주와 손을 잡자’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채널A <외부자들>에서 정 전 의원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 전 의원처럼 실제로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이가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이들의 예측은 무슨 의미일까.
일단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대부분의 예측은 틀린다는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든 사회경제 영역에서든 동일하다. 이는 각 시기에 나왔던 예측과 이후 실제로 전개된 역사를 비교하면 쉽게 확인된다. 아무리 많은 경험과 통찰력과 데이터를 동원해봐도 사태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예측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어차피 1할 타율의 타자들이니 아무나 타석에 세워도 동일한 승률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예측은 ‘그림’이 잘 들어맞는 것이다. 예측이 제시한 사회상과 실제로 전개된 사회상이 얼추 비슷해 보일 때 우리는 예측이 ‘맞았다’고 인지한다. 정봉주 전 의원 같은 이가 어필하려는 부분은 이 영역이다.
하지만 맞았지만 쓸모가 없을 예측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하는데) 맞지 않았지만 쓸모가 있을 예측도 있다.
예측은 구체적 개인, 혹은 기업을 향한 것이다. 예측이란 행위의 핵심은 변화의 상황에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와 ‘어디에서 기회를 노려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는 것이다.
즉, 쓸모 있는 예측은 사회상의 ‘그림’을 얼추 비슷하게 맞췄냐의 여부와는 크게 관련이 없고, 문의하는 이에게 앞의 두 질문에 대한 의미있는 답변을 주었느냐는 것으로 판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에 ‘결과적으로 성공한 예측’은 ‘제대로 된 위험을 대비시켰고, 정말로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한 역량을 준비시켰는가’라는 질문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렇게 ‘예측은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바로 ‘쓸모 있는 예측을 가려내는 방법은 무엇인가’의 문제다.
이 문제는 차후에 다루도록 하자.
한윤형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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