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입원해 본 사람이라면 기계적인 진료에 주눅이 들거나 의사들의 난해한 전문용어들을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병원은 질환을 치료한다는 두려움을 제쳐두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과연 의사와 환자 사이에 소통은 불가능한 것일까?
안덕선 고려의대 성형외과의사는 "현대의 의술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떠나 의과학과 고장기관의 대리 관계로 환원되고, 의사는 환자에게 진단에 필요한 검사를 결정짓는 의과학의 지식을 제공하는 매개체이고 환자는 고장기관을 대표하게 됐다"며 "어떻게 보면 치료관계의 목적을 달성만하면 되는 편리한 관계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결과지상주의를 비판하며 목적달성 과정에서 고상함이나 품위 대신 사악함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의학에서 품위와 고상함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도리, 즉‘인간적’을 의미한다.
현대의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인간성 상실에 대한 우려와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강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의과학 역시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인간성 상실이라는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의학의 현대성에서 인간적 의학이란 곧 사람과 사람의 바람직한 관계를 의미한다는 매우 쉬워 보이는 명제가 실제로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사람과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를 매우 쉽게 보는 상상력의 부족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의료제공자인 의사는 인간적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대체 입력이 안 된 사람들일까?’
의사들이 모여 상상력의 결여로 인해 빚어진 비인간적이고 고착화된 현 의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의학에서 상상력은 단순히 기발한 것을 만들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의학적 상상력’이란 우는 아이들의 청진을 더 쉽게 하기 위해 청진기를 따뜻한 장난감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부터 가난한 시골 벽지의 사람들도 모두 편안하게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국가 의료 제도를 만드는 것, 죽어가는 환자들을 잘 돕는 가장 편안한 대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에 이르기까지 의학이 필요로 하는 상상력은 단순한 기발함을 넘어서는 것이다. 의학적 상상력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과 ‘첨단 과학기술’과의 ‘결합’이다.
역사적으로도 의학은 언제나 정신과 과학의 결합물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탄생한 것도 그 시대가 가지고 있던 가장 앞선 정신과 그 시대의 최고 과학이 합쳐져서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의사들이 어떤 생각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왜 이처럼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의료문화가 고착되었는지, 메디컬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의학적 상상력의 존재 이유: 최고 수준에서 인간의 고통과 맞서 싸우는 일
사실 ‘의학적 상상력’이란 우리에게 낯설고 거리감 있는 단어다. 실상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다. 진정한 의미의 의학적 상상력은 ‘정신적(인간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을 합해져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의학적 상상력을 상상하는 것이 바로 21세기 의학의 최대 과제는 아닐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여 인간의 고통과 맞서 싸워 인간을 보호해내는 일. 그것이 의학적 상상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역사를 통해 수천 년 동안 당시의 지식만으로 모든 의학적 사실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이러한 의학의 불완전성은 끊임없는 진리 추구와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즉 확고한 사실의 기반 위에서 창조적 정신을 억압하는 관습에 맞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용기, 즉 ‘구체적인 의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현실이 된 로봇 수술
2010년 4월 12일,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에서 수술용 로봇 ‘다빈치’와 함께 945번째 비뇨기과 수술인 전립선암 절제수술이 진행되었다.
로봇이란 용어는 약 80여년전인1921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쓴 희곡「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Robots」에서 처음 사용됐다. 당시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단순한 기계를 의미하였다. 그 후 1950년, 아이작 아시모프IsaacAsimov가 쓴 공상과학 소설에 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했다.
현재 많이 인용되는 로봇의 3대원칙이 바로 여기에 나온다. 이어 1970년대에 아주 유명한 영화〈스타워즈〉에 R2D2라는 로봇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최근에 영화〈터미네이터〉시리즈 등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어 더이상 로봇이라는 존재가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은 로봇들이 나오고 있지만 의료에 사용되는 로봇은 그리 많지 않았다.
로봇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의료에 접근했던 영화가 있다. 1966년 영화〈마이크로 결사대〉는 총상으로 한 과학자가 뇌 손상을 받았는데 손상부위가 아주 깊어서 일반적인 외과수술방법으로는 오히려 환자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줄 가능성이 높아, 외과의사 한 팀을 아주 작게 축소시켜 환자의 말초혈관을 통해 혈관 속을 거쳐 손상된 뇌 부위로 들어가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고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실현될 수 없는 꿈같은 내용이었다. 현재 의학의 수준에서는 비록 사람이 축소돼 들어가지는 않지만 외부와 연결된 아주 가느다란 기구를 말초혈관을 통해 병변 부위에 도달시켜 여러 가지 조작을 통하여 실제로 활발히 치료를 하고 있다.
상상력과 뇌의 상관 관계
2005년 하워드 존스Howard-Jones 박사 연구팀은 실험참여자들에게 세 단어를 제시하며 이야기를 꾸며보도록 하는 과제를 제시했다. 실험조건에서는 기발한 이야기를 꾸미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조조건에서는 평범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두 조건의 비교를 통해 기발한 이야기를 생각해낼 때 관여하는 영역을 분석해본 결과 안쪽 전두엽의 활성이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의 연구주제 중에‘무쾌감증’이란 정신증상이 있다. 이는 뇌기능 이상으로 정서반응이 둔화되어 웬만한 자극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연구결과 무쾌감증은 자유상상의 상태에서 안쪽 전두엽 활성을 억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사고와 감정이 모두 둔화되고 빈약해져 병적인 상태가 될 때 창조적 상상도 불가해짐을 함의한다. 안쪽 전두엽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특정한 과제가 주어졌을 때 주의 조절 역할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 주의 조절의 중추는 특정한 과제가 없는 자유상상의 상태에서 자동적 활성을 나타낸다.
명상에 돌입했을 때 이러한 활성이 증가되는 현상을 보인다. 마음을 비우도록 반복적 수련을 하게 되면 안쪽 전두엽의 기능 강화가 가능하다. 안쪽 전두엽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격 특성과도 연결되고, 창조성을 자극하는 과제 수행으로 더욱 증가된 활성을 나타낸다. 상상력을 동원해 창조성에 도전하는 일도 훈련을 반복하면 안쪽 전두엽 기능 강화를 통해 실현 가능한 일이다.
창조적 작업이 반드시 천재들의 영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반복적으로 훈련을 하게 되면 새로운 신경연결이 풍부해지는 가소성을 장착하고 있다. 새로운 신경연결은 기존 기능의 강화와 더불어 새로운 기능의 습득도 가능하게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성공한다. 가소성의 뇌는 노력을 성공으로 이어주는 보증 장치다. 창조적 작업이 반드시 천재들의 영감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반복적으로 훈련을 하게 되면 새로운 신경연결이 풍부해지는 가소성을 장착하고 있다. 새로운 신경연결은 기존 기능의 강화와 더불어 새로운 기능의 습득도 가능하게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성공한다. 가소성의 뇌는 노력을 성공으로 이어주는 보증 장치다.
환자와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의사는 환자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환자를 직접 들여다보고, 그와 이야기 나누고, 아픈 몸을 만져주는 가운데 어떤 종류의 앎을 얻게 될까?
그 앎은 어떤 태도를 낳게 되는가?
의사가 ‘당신은 알지 못해요!’라는 단말마의 고통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환자의 고통을 알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의학은 환자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병을 가진 존재인 환자가 아니라, 살아온 인격으로서의 아무개를 알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반영한 태도는 또 무엇인가?
오래된 주장이긴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의료인이 환자에게 접근할 때, 의사가 가져야 할 덕목에는 자비가 포함된다. 환자가 경험하는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진정한 의미의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설명과 접근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환자를 이름 없는 존재로 소외시키지 않도록 '환자의 개별적인 요소를 개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의사들에게 필요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자비(compassion)이라고 할 수 있다.
자비로운 사람은 타인이 경험하는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같이 경험하고, 동일한 고통을 겪는다. 동시에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안녕을 증진시키고 싶어 한다. 공감(sympathy)과 문제해결이 자비의 구성요소인 셈이다. 공감은 상상을 통해 얻어진다. 일차적으로 이 상상은 감각적이다. 신체적이든 감각적이든 상대방의 감정을 고통스럽게 체험하는 것이 상상의 능력이다.
어떤 이들은 이 고통이 발목에 달린 연자맷돌처럼 무겁게 느껴질 것이고 그런 이들이라면 고통의 실제를 헤쳐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공감의 위험이며 의사들이 감정을 배제하도록 훈련하는 이유다. 환자의 문제에 ‘초연한’‘관심’이라는 모순적인 태도가 의료인들에게 요구된다. 그들은 환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감정적 무게를 인정하지만 환자의 문제에 감정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도록 배워왔다.
그런데, 환자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고 그의 두려움이나 그에게 우선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경험 없는 이해는, 이해하는 척하는 것에 불과하다. 차라리 알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대 의학의 힘과 전통의 중요성
의학 윤리를 다루면서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의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더불어 의사들에게 환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인간적인 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 외에도 왜 국내의 의학계가 이처럼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과 이유를 풀어나가며 인간적 의학을 위한 상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에 의존하여 상상력만으로 의학을 펼쳤던 고대의학의 힘과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 <유니버설 솔저>에 나오는 인간들은 특수과학으로 처리하여 어떤 명령에도 절대복종을 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더불어 놀라운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보유하여 특출한 능력을 갖춘 기계적 용사로 다시 태어나 무자비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죽이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에게 인간적이라는 면모는 오히려 목적 달성을 위하여 방해가 될 뿐이다. 명령에 따른 임무완수가 이들의 목표이다. 수단과 방법은 별로 문제되지 않아 보인다. 이들의 임무는 대개 사악함에 대한 면책 특권이 부여되어 있고 사악함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역시 정당화되어 있다. 다만 임무수행 장애의 제거라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적당하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우리 교육제도에 빗대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과장되게 말하자면 초등학교부터 공부하는‘기계’가 되어야 한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머릿속에 축적된 과도한 양의 단편적인 지식은 많은 부분 사용 불가능한 것들이거나 기억력만으로 버티기 힘든 재생 불가능한 지식들이다. 먼저 암기하였던 것들이 사용하기도 전에 이미 용도 폐기되고 만다. 아픈 환자가 오면 우선 가능한 진단부터 상상할 수 있어야 하나 실상 학교에서 배운 것은 환자 진단명과 진단 질환의 과학적 해석이었다. 살인병기의 전투요원에게 인정이나 따듯함은 금물이다.
환자는 의사에게 따스함이나 온정적인 관계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사양성 교육은 의사가 환자를 볼 때 환자와 인간적인 만남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환자의 말과 몸에서 나오는 신호를 재빨리 파악하여 과학적인 지식으로 가장 그럴듯한 진단명을 도출하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도출한다. 특수요원들이 임무완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환경은 의사-환자의 인간적 관계의 설정이 우선이기보다는 질병과 의과학 지식의 관계 설정을 위한 과학적 상상력만을 키울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질병으로 인해 겪을 고통과 여러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의사 양성교육에서 과학적 지식만을 암기하며 무의미하게 양적인 축척을 도모하는 것은 이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우선 인간적인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호모 이마기난스의 복권이 시급하다
한국 의학은 아직도 상상력이 억압되는 환경에 처해 있다.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는 인간적인 상상력과 기계적 상상력의 불균형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환자와 공감하는 인간적인 의학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데이터만으로 치료하는 불완전한 치료법에서 벗어나 상상력이 불어넣어진 데이터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적 상상력과 기계적 상상력의 불균형이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의학이 근현대의 학문들처럼 계속해서 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너무 전문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호모 이마기난스(Homo Imaginans)의 복권이 시급하다. 의사는 상상하는 인간이어야 한다. 무한정 생산되고 축적된 과학지식에 함몰되어 환자-인간을 보지 못하고 병만을 보는 의사는 상상력이 결핍된 의사다. 상상력이 결여된 지식 자체는 한갓 죽어 있는 데이터에 불과하다. 데이터만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상상력으로 데이터에 혼을 불어넣을 때 그지식은 진정으로 쓸모 있는 지식이 된다.
21세기에 상상력은 더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기보다는 무한정 쏟아지는 지식정보들을 조직하여 새롭게 디자인하는 능력이다. 호모 이마기난스로서의 의사는 환자의 병으로부터 환자 개인, 가족, 사회에 대한 스토리를 엮어내는 이야기꾼이어야 한다. 스토리를 통해서 의사는 환자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상응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을 개발한다.
의사의 진정한 모습은 환자의 삶 전체와 그가 서 있는 사회에 동참하는 라이프컨설턴트다. 이것이 모두 의학적 상상력의 함의들이다. 미래의 의학은 지식기반 의료에서 상상력과 창의력 기반 의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인간적 상상력과 기계적 상상력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의사와 환자의 진정한 인간적 교류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의학이 상상력과 만나야 하며 타 학문과 공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료: 의학적 상상력의 힘.Medical Imagination (저자 전우택 임정택 등)
장선우 기자 new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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